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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전 중국의 한반도 침입을 막은 안시성 전투과 양만춘 장군
안시성은 645년, 수십만의 당의 군대를 맞서서 고구려를 지켜낸 안시성 주민들의 기적적인 승리를 한 곳이다.
당시 고구려는 남쪽으로는 신라에게 한강을 빼앗기고 서쪽으로는 당나라에게 압박을 받아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으로는 왕권이 약화되어서 쿠데타가 일어납니다.
연개소문이라는 막강한 권력자가 나라를 좌지우지했던 내우외환의 시기였습니다.
그 이후 연개소문은 행정과 군사권을 총괄하는 '대막리지'라는 관직을 만들고, 스스로 그 자리에 올라서게 됩니다.
그러면 당시 당나라의 입장은 어땠을까요?
당나라 태종 이세민도 쿠데타를 통해서 형제를 죽이고 황위를 차지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세민: 당나라 2대 황제('현무문의 변'이라는 권력 탈취 쿠데타를 통해 황제의 자리에 오름 626년 8월)
정권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안으로는 내부적 단결을 꾀하기 위해서 밖의 주변 국가들을 공격해서 영토를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나라가 반드시 꺽어햐 할 나라가 있었습니다. 바로 고구려였습니다.
이 고구려는 혼란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동북아 최고의 강자였습니다.
그래서 당나라는 고구려를 치기 위해서 전쟁의 명분을 만듭니다.
당태종은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고구려 왕을 죽이고 정권을 잡아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런데 연개소문이 죽인 영류왕(고구려 27대왕)은 친중국적 성향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당태종은 '옳거니 때는 이때다!' 고구려를 용서치 않으리라! 하며
이세민은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쳐들어가게 됩니다.
644년 10월 14일 당나라 수도, 장안에서 출발
당태종 이세민이 이끄는 당나라군은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갑니다.
요동지역에 있었던 고구려의 개모성, 비사성, 요동성 그리고 백암성까지
모두 일거에 격파하며 결국 안시성에 다다르게 됩니다.
안시성의 앞에는 요하강이 흐릅니다. 그래서 적을 방어하기 편리합니다.
강 유역의 곡창지대를 통해 군량을 수급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뒤로는 천산산맥을 등지고 있어서 말 그대로 자연이 만든 천혜의 요새였습니다.
그리고 안시성이 더더욱 굳건했던 것은
성주민들을 단결시키고, 굳건히 성을 지켰던 성주, 양만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안시성의 상황도 그리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양만춘은 고구려 최고 권력자 연개소문과 갈등을 빚고 있었습니다.
연개소문이 왕을 죽이고 쿠데타를 일으켰던 그때,
양만춘은 협력은 커녕 연개소문에게 저항을 했고,
화가 난 연개소문은 안시성을 공격합니다.
그런데 이 공격을, 양만춘 장군이 안시성 주민들과 함께 잘 막아냈어요.
그래서 그 이후 둘의 관계는 서로 상당히 껄끄러운 상태였습니다.
한마디로 상황이 이러하니까 안시성은 외부에서의 도움과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고립무원의 상태였던 겁니다.
이런 위기의 상황 속에서, 당시 당태종 이세민이 이끄는 수십만 대군과 작은 안시성의 양만춘 장군이 대격돌을 하게 됩니다.
이 당군은, 단순히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닙니다.
이전의 수나라의 패배를 교훈삼아서 잘 훈련된 최정예 부대를 대동했고,
그리고 성벽을 허물 수 있는 최신 공성무기들을 등장시키게 됩니다.
당나라 대군과 안시성의 전투가 벌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당나라 군대는 초반부터 난관에 부딪치게 됩니다.
이전에 격파했던 성들의 저항과는 차원이 다른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안시성 주민들이 당군에 맞서 잘 싸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내부적 단결이었습니다.
그전에 있었던 연개소문의 공격을 막아냈다는 승리의 자신감이 있었고,
그리고 그 전투과정에서 성 주민들이 아주 훌룡한 병사로 성장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양만춘 장군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당의 공세를 무려 88일간 막아내게 됩니다.
그런데 이 88일은 당태종 이세민의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안시성이 눈앞에서 꿈쩍도 하지 않으니까 진퇴양난에 설상가상이 된겁니다.
마음이 조급해진 당나라 태종은 눈앞에 있는 안시성을 반드서 넘어가야만 하다는 생각에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황당한 작전을 세우게 됩니다.
안시성보다 더 높은 토산을 쌓자는 겁니다.
그런데 그 토산은 무너지면서 안시성 성벽 쪽으로 푹하고, 무너져 버립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번개처럼 안시성 정예부대가 토산의 정상을 순식간에 점령을 해버립니다.
무너진 토산마저 허무하게 빼앗긴 당태종은 좌절하게 됩니다.
이미 요동반도는 겨울을 알리는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88일에 걸친 긴 시간 동안 군량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아직 함락하지 못한 고구려의 신성과 건안성이 있는게 부담이었습니다.
결국 당태종 이세민은 안시성 앞에서 결국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당나라의 퇴각 645년 9월)
요동반도의 추위에 쫓기듯, 찢기듯 떠나게 됩니다.
이 당태종이 패배가 얼마나 쓰라렸는지 결국 전쟁에서 얻은 병으로 본국에 가서 죽게 됩니다.
그때 남긴 유언이 "다시는 고구려와 전쟁하지 말라"라는 것이었습니다.
1400년전 중국의 한반도 침입을 막은 안시성 전투입니다.
당나라는 자신들에게 치욕적인 안시성 전투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고, 고구려를 멸망시킨 신라 역시 안시성 성주가 싸웠다는 정도만 기록하고 양만춘의 이름은 지워버렸습니다. 그리고 천년의 시간이 흘러 때는 조선시대 당시 병자호란(1636년)으로 백성들이 수치스러워하고 있던 그 시절에 안시성 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라는 것이 우리 역사 속에 최초로 기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