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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망한 진짜 이유

뽀로로친구에디 2019. 3. 20. 13:07

조선이 망한 진짜 이유 -> 농본억상 때문!!


조선이라는 나라가 왜 망했나?

중국의 괴롭힘때문에?

일본의 침략때문에?

그 이유는 바로 농본억상 정책때문에!!

농본억상은 농업을 근본으로 삼고 상업을 억압하는 정책

이것의 핵심은 상공업을 억압한다는 정책입니다. 

정도전과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자마자 공상세라고 하여 공업과 상업에 잡세를 늘려 상공업을 억압하고 조선초 백성들의 상업을 전부 없애버린뒤 중앙정부 상점만 허용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고려시대 벽란도를 통한 아라비아, 금, 송, 일본과 활발한 무역으로 지금 코리아라는 영문국가 이름도 조선은 무역을 거의하지않았기 때문에 500년을 버틴 조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건국부터 조선은 성리학이라는 학문을 바탕으로 상공업은 놀기 좋아하는 백성들이 일을하기 싫어 상공업에 종사한다하고 억압하였으니 이때부터 문명이 쇠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도로사정이 좋아 수레를 이용했다면 조선시대부터는 길이 좋으면 적군이 처들어오기 좋다하여 도로는 전혀 발전시키지 않고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고 나서부터는 아예 길이 없어 수레는커녕 사람도 어깨를 부딧치며 다녀야 할정도로 거리가 좁았습니다. 그로인해 조선시대 사람들은 수레가 아닌 지게를 지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을 방문한 미국의 소설가 잭런던은 조선사람 엿보기라는 책에 조선인들은 가장 비능률적인 민족이며 딱한가지 뛰어난 능력이 있는데 그것은 말처럼 짐을 지는 능력이라고 비꼬아서 소개 했을 정도로 물건을 지고다니는 조선인들의 모습이 우스워 보였다는 겁니다. 길이 없으니 수레가 없어지고 지게를 매고 다닌것인데 말이죠. 게다가 신라와 고려시대때는 만들수 있었던 바늘을 조선에와서는 청나라에게 수입해서 썻는데 이는 공업을 억압하여 제대로된 바늘을 만들수 있는 장인들 마져 되물림되지 못하는 폐해를 낳게 됩니다. 

 고종의 승정원 일기에는 옛날에는 채색기와가 있었으나 후세에는 그것을 만드는 법을 모르게되었다. 하여 통탄스럽다 하여 김세균이 아뢰기를 '옛날에는 그것을 굽는  기술자가 있었으나 그 법을 혼자 알고서 숨겨서 세상에 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에 아는 이가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과거 조선시대에 농본억상 정책을 보니 딱 북한의 정책과 비슷합니다. 중앙정부에서만 중국하고 무역을 하고 민간업체는 무역을 못하는 북한은 발전할 수 가 없습니다. 민간의 경쟁도 없고 부자가 되는 꿈도 꿀 수 없는 정책이 바로 농본억상정책입니다. 그런데 농업을 근본으로 삼았다면 농업이 크게 발전했느냐? 그것도아닙니다. 애초에 산간지방이 많은 우리나라에 농업은 근본으로 삼은것도 문제이고 상공업의 발전없이 농업만 발전하는것도 말도 안되고 상공업이 고조선때로 돌아가고 있었고 상업 억압으로 자본이 없어 농기구를 살 수 가 없고 공업의 쇠퇴로 농기구를 만들수도 없었으니 농지를 개간할 때 맨몸으로하니 농지가 깔끔할 수 없었습니다. 영국의 여행작가 이사벨라 버드 비숏의 한국의 농업을 관찰할때 일본의 정갈함과 산뜻함과 중국의 부지런하고 알뜰함에 비해 조선의 농업은 헤프고 정리되지 못하며 울퉁불퉁한며 농기구는 조잡하거나 거의 없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게다가 청나라에서 조선 정조(1784년) 시절 농업은 판단한 글에는 하천 저수지의 제방이 없어 홍수만 나면 농작물이 망치었고 가뭄이 들면 관개시절(저수지)를 사용못해 말라 죽었고 그저 미개하여 풍년기원 제사 드리는게 전부였다고 하며 홍수가 나면 왜 홍수가나는지모르는 미개인들 이였다고 기록 되었습니다.

이렇듯이 무역을 하지 않고 상공업을 발전시키지 않은 대가는 미개인으로 살아갈수밖에 없었습니다. 유교사상, 성리학 사상만 강조하며  오백년 역사를 버텨낸 것이지요. 다른 의미로는 대단합니다.문명의 발전없이 500년을 정신력으로 버텨왔다니 말이죠. 그런데 그렇다고 유교사상, 성리학 사상을 잘따랐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유교사상 성리학 사상에서 가르키는 도덕의 개념과는 반대로 가고 있었고 때문입니다. 실제 조선시대에서 10분의 1정도가 세금이였습니다. 나중에는 별별세금을 다 붙혀서 떄어갔는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의하면 전라도 강진의 경우 20여 가지 지방세가 있었다고 합니다.그리고 미국의 여행소설가 잭런던의 '조선사람 엿보기'라는 책에는 구한말 조선인들이 일본군 병사들이 돈을 내지 않고 식량을 가져가는것을 불평을 하였는데 사실은 조선관리들이 중간에서 가져간 식량의 가격을 빼돌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관리들의 돈을 빼돌리는 수완은 서양인들을 능가한다고 평가하였습니다. 나라에서는 세금으로 지방관리들은 착취로 백성들을 괴롭혔으니 백성들은 흙으로 만든 초가집에서 살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과학적고 자랑스럽게 여긴 초가집이지요. 1921년 중국에 가는 길에 조선을 방문한 영국의 신문재벌 노스클리프는 조선의 초가집을 평가하였는데 아프리카 토인들도 저것보다는 나은집에 산다고 평가하며 일본관리들이 있음에도 한국기자에게 독립을 원하냐 물었고 한국기자가 용기를 내어 그렇다고 답하자 독립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있냐 물어보자 또 그렇다고 대답하자 나라면 조선인들에겐 1%도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노스클리프에겐 아프리카 사람들처럼 미개해 보였다는 것이지요. 투자할 가치도 없을만큼요. 어떠신가요 ? 우리 조선의 역사를 폄하하는 글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의 위대한 역사를 너무 비판하는걸까요? 하지만 잘못 아는것 보다는 제대로 아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는 양반들에겐 유토피아 일지 몰라도 백성들의 삶은 정말 헬조선이 아니였다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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