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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노비가 된 단종의비 정순왕후의 삶 


정순왕후는 단종의 정비로 어진성품과 검소 미덕을 인정받고 간택되 15세에 바로 왕비가 되었습니다.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으로 실권을 빼앗기고 얼마안가 단종의 왕위 까지 빼앗기게 되자 왕의대비가 되었으며 2년 정도는 왕대비로써 그나마 괜찮은 삶을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얼마안가 성상문, 박팽년 등 사육신이 단종 복위 운동이 발각되자 자신의 위협을 느낀 세조는 상왕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키고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보내고 왕대비인 정순왕후(의덕왕대비)는 군부인이 되어 궁에서 쫓겨났습니다. 여기서 정순왕후는 단종과 같이 있으려 했으나 세조는 둘사이의 후손이 탄생할것을 두려워해 같이 살지 못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단종과 정순왕후는 청계천에 있는 영도교에서 울면서 이별을 했다고 합니다. 그 후 같이 사육신들과 단종복귀 운동을 하다 유배를 간 금성대군이 순흥에서 고을 군사와 선비를 모아 복귀운동을 재 전개하려다 금성대군의 시녀가 밀고하는 바람에 정축지변이라는 일이 발생하는데 여기서 세조가 철기군을 보내 금방 11키로까지 모든 양민을 죽여 조선 최초의 양민학살사건이 발생합니다. 이것은 현재의 피끝마을이라는 지명의 유래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사건 이후 단종은 사약을 받아 사사되고 정순왕후는 군부인에서 노비로 강등 되었으나 세조가 알게 모르게 단종을 따르는 자들의 반발을 우려해 신분은 노비이지만 노비로 부리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명령의 발단은 정순왕후를 한 역사서에는 신숙주, 세조실록에는 세종대왕의 부마 정현옹주의 남평인 정사로가 정순왕후 송씨를 노비로 달라고 하였다고 전해질정도니 사실이든 아니든 정순왕후가 미색이 뛰어났음을 짐작케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신숙주의 정순왕후를 노비로 달라고 했던 언행은 실록이 아닌 역사서이고 조선말 작성한 역사서이니 시대가 맞지 않아 소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튼 노비의 삶은 면하게 된 정순와후는 양반의 딸이였지만 생계를 위해 염색업을 하였고 이를 안 세조가 어떤 이유인지 식량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 후 단종을 추모하며 동망봉에서 명복을 빌다가 82세까지 장수하다가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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