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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자들의 하루일과

뽀로로친구에디 2019. 3. 22. 11:29

조선시대 여자들의 하루일과


조선초기에는 고려시대의 영향이 남아있어 그나마 평등한 사회였고 조선중기부터가 진정한 지옥의 시작이였습니다. 새벽 5시경에 일어나서 쌀을 씻는것이 하루일과의 시작이였습니다. 물론 여기서 취사에 쓸물이나 식수를 공동 우물이나 냇가에 길러왔습니다. 양반집이나 부잣집은 집안에 우물을 파서 집안에 우물이 있었지만 서민들의 삶에는 당연히 그런것은 없었습니다. 물론 물 기르러 가면서 이웃들과 담소도 나누고 정보교환도 하는 낙도 있었습니다. 

다시 부엌으로와서 물 담는곳에서 밥을 지었으며 대부분 간장이나 된장으로 간을 맞추고 돌로만든 식기인 돌확과 확돌을 이용해 양념을 만들었습니다. 바가지는 박으로 만든 바가지를 이용하였으며 상을 차리고 나면 노인과 남자들이 먼저 먹고 남은 음식으로 여자들이 바가지에 대충 담아 밥을 먹곤 했습니다. 이렇게해서 짚으로 만든 수세미로 설거지를 끝내면 이제 빨래가 시작됩니다. 

빨래의 방법은 간단했는데 세제없이 옷에 얼록이 없어질때까지 방망이로 두들겼습니다. 힘이들면 양손으로 하였고 비벼 빠는것도 좋지만 그렇게 하면 옷감이 상해 얼마 못입게 되므로 방망이를 사용했습니다. 다 된 빨래는 풀밭 수풀에 널어서 말렸으며 거기서 또 동네 여자들끼리 정보도 교환하고 담소도 나누며 낙을 즐겼습니다. 점심이 되면 들에서 일하는 남성들에게 밥을 줘야하니 먼곳에서 일하는 남성에게는 도시락을 싸주었으나 대부분 점심을 남편에게 직접 날랐는데 머리에 원형으로 볏짚으로 된 또아리를 대고 밥과 반찬을 날랐습니다. 이후시간에 평상시에는 농사일을 같이 하였으며 집안이 어려우면 나가서 행상을 하였고 그게 아니라면 김매기, 나물캐기, 채소기르기 등을 하며 농사일을 하다 모내기, 벼베기 시즌에는 온가족이 같이 농사를 했습니다. 

다시 저녁으로 돌아와 저녁밥을 차리고 치운다음 가족들이 쉴때 여자는 가족들이 입을 의류를 만들었는데 바느질과 홍두깨질을 하며 무명과 모시로 옷을 만들었습니다. 이 과정은 삼이나 모시를 쪼개고 비벼 연결하여 실을 뽑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 손톱으로 가늘게 쪼갠뒤 맨 무릎에 쪼갠것을 비비는데 무릎 살이 벗겨지고 피가 날 정도로 고통 스러웠다고 합니다. 게다가 나라에서 군대에 대한 군역으로 면포를 만들어 내야하는데 면화씨를 뺀다음에 물레로 자아 만든실로 이것으로 면포를 짜는일을 길쌈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1년 내내 해서 남자들의 군역을 대신해야 했습니다. 군역을 해결하고 남은 면포는 물물교환이나 화폐처럼 사용가능했으므로 면포를 안짜는 시즌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속에 홀로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임신중이라도 업무에 빠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여자들이 치장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만 당시 여성들은 의복도  대충 입고 짚신도 없는 경우가 많았으니 장신구는 당연히 없었고 손톱에 붕숭아 물로  물들이는것 외에는 인위적인 치장은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여자들은 남편이 죽어도 재혼이 금지되었고 겸상을 금지하고 모르는 남녀의 얼굴은 보지 못하게하는 내외법이 있었고 칠거지악이라고 하여 아내를 내쫒아도 되는 일곱가지 사항 이라하여 시부모를 섬기지 않는것, 아들을  낳지 못하는것, 부정행위, 질투, 병, 말이 많은것, 훔치는 것이 있었다가 1908년에 와서야 2가지 항목을 삭제한 오출사불거로 수정되었으니 조선시대 여성들은 정말 대단히 힘든것 같습니다. 이 글을 보고 지금 여자들은 편한줄 알아라 이런 의미가 아니라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개고생하며 살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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