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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 추신수
추신수(秋信守, 1982년 7월 13일 ~ )는 외야수, 지명타자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아버지와 외삼촌의 영향으로 8살 때부터 야구에 입문했다. 추신수의 아버지는 아마추어 복싱과 수영 선수를 지낸 추소민이고, 외삼촌은 전 롯데 자이언츠의 2루수인 박정태, 동생은 배우 추민기이다.
이대호와는 수영 초등학교 동기이다. 부산고등학교시절에는 좌완 파이어볼러로 고교 야구계에서 유망한 투수 출신이었다. 2000년에는 청소년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해 인상적인 활약을 남겼고, 이 대회의 활약으로 메이저 리그 팀 시애틀 매리너스는 추신수를 영입하기 위해 KBO에 신분 조회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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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2001년 롯데 자이언츠로부터 1차지명 되어 계약금 4억 2,100만원을 제시받았으나 계약 조건에 이견을 보여 추신수는 입단을 거부했다. 결국 2000년 6월 29일에 협상은 완전히 결렬되었고 당시 시애틀 매리너스 스카우터로 대한민국에 상주하고 있었던 이재우 전 OB 감독과 매리너스 입단에 대해 구두 계약을 하게 되었다. 2000년 캐나다 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야구 대회에서는 이대호, 이동현등과 함께 우승에 기여하였다. 추신수는 이 대회에서 투수로 출전해 18이닝을 던져 32탈삼진 5실점의 뛰어난 성적으로 대회 MVP를 획득했다.
결승전이 끝난 후, 2000년 8월 14일 계약금 135만 달러의 조건으로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했다.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다고 했을 때 추신수는 투수로 계약한 줄 알았지만 시애틀에서는 추신수의 5툴 플레이어로서의 가능성을 높이 샀기 때문에 타자로 전향시켰다. 2001년부터 시애틀 매리너스 산하 마이너 리그 팀에서 타자로 뛰었다. 매년 마이너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잠재력을 보여 줬지만, 시애틀 구단에서는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았다. 2005년 4월 21일에 처음 메이저 리그로 승격하여 데뷔하였고 주로 대수비나 대주자로 출전하였다. 😀
2006년 시즌 중반에 메이저 리그로 다시 승격되었다. 원래 수비 위치가 우익수이고 수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이 위치는 스즈키 이치로가 주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인인 추신수는 대부분 중견수 백업으로 출전하였다. 추신수는 15타수 1안타의 극도의 타격 부진을 겪은 후 7월 27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내야수 벤 브루사드(주로 1루수로 활약)와 맞트레이드 되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이적했다. 클리블랜드로의 트레이드는 굉장히 좋은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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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클리블랜드에 이적한 이후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적 2일 후인 7월 29일에는 전 소속 팀 시애틀과의 홈 경기에서 시애틀 에이스 펠릭스 에르난데스의 직구를 받아쳐 1-0으로 승부를 짓는 결승 솔로 홈런을 만들어냈다. 8월 4일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6회 조시 베켓의 초구를 공략하여 만루 홈런을 치기도 했다. 클리블랜드 이적 후 타율.297, 3홈런, 22타점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2007년 시즌 초반에 클리블랜드는 베테랑 타자인 트롯 닉슨과 데이비드 델루치를 영입하였는데, 이들은 추신수와 같은 좌타자이면서 외야 수비가 가능하였기 때문에 유망주인 추신수에게는 출장 기회 감소로 이어졌다. 여기에 추신수는 팔꿈치 부상으로 토미 존 수술을 하게되어 시즌을 마감한다. 2008년 시즌 초반 부상자 명단에 등재되어 있었고, 5월 31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원정 경기때 복귀하며 주전 우익수로 시즌을 시작했다. 초반에는 2할 4푼~5푼대의 저조한 타율을 기록하여 부상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했으나 지속적인 출장이 이어지면서 기복이 없는 타격 능력을 보여 주게 되었다. 시즌 중반부터는 타격재능을 폭발하기 시작하여 8월 한 달간 출루율 4할, 장타율 6할로 활약하였다. 9월 12일에는 48타점을 기록하여 최희섭이 가지고 있던 종전 한국인 타자 시즌 타점 기록을 경신했다. 9월 20일에는, 87개째 안타를 쳐내며,
2004년 최희섭이 가지고 있던 한국인 메이저 리거 한시즌 최다 안타 기록 86개를 넘어섰다. 이러한 활약으로 추신수는 샤프에서 시상하는 아메리칸 리그 9월의 선수로 선정되었고 소속 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가장 기대받는 선수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2009년에는 WBC에 참가하여 준결승과 결승전에서 2경기 연속 홈런을 쳐 내면서 대한민국의 준우승에 기여하였다. 다만 2006년 대회와 달리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병역 특례가 부여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되어 병역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다. 한편 레귤러 시즌에서는 메이저 리그에서 처음으로 풀 타임 출전하였고 팀의 중심타자로 완전히 자리를 잡는다.소속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시즌 내내 부진을 면치 못했으나 추신수는 고군분투하며 동양인 메이저 리그 타자 최초로 20-20 을 달성했다. 특히 그래디 사이즈모어, 트래비스 해프너, 빅터 마르티네즈같은 소속팀의 중심 타자들이 부상과 부진으로 경기에 결장하는 위기속에 추신수는 4번 타자로 출장하며 존재감을 보였다. 결국 타율 3할에 20홈런, 86타점으로 시즌을 마쳤다. 그가 2009년 때려 낸 20개의 홈런은 종전에 최희섭이 가지고 있던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한 시즌 최다 홈런 15개를 경신한 것으로 그에게 있어서는 의의가 깊은 한해였다. 또한 그는 2009년 아메리칸 리그에서 타율3할과 20-20 을 같이 달성한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2010년에 들어서자 타격능력과 주루능력이 더 발전하였다. 시즌 초부터 3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는 등 불방망이 타격감을 기록했다. 5월에 상승세가 주춤하긴 했으나 클리블랜드의 '핵심 타선'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9월 2일 시애틀 전에서는 팀을 4연패에서 구하는 역전 투런 홈런포함 5타점을 기록하기도 했고 9월 18일 캔자스시티전에서는 3연타석 홈런까지 기록했다. 😎
이후의 경기에서는 20홈런 ,20도루를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에서 2시즌 연속 3할 및 20-20 클럽 달성에 성공한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또 출루율도 상당히 높은 4할 1리를 기록하였다. 한편 2010년에 추신수가 상대한 구단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낸 구단이 캔자스시티 로열스이기 때문에 캔자스시티 킬러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다. 그는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상대로 타율.377를 기록했고, 출루율은.488, 장타율은.638, OPS는 1.126를 기록했다. 신시내티 레즈에도 강한 편이었는데 추신수는 신시내티를 상대로 3할 1푼의 타율과 OPS 1.006을 기록한적이 있다. 반대로 2010년 추신수를 가장 잘 막은 팀은 미네소타였다. 2011년 메이저 등록일수 3년을 채워 연봉조정자격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인디언스는 추신수에게 5년 4500만달러의 장기계약을 제시했지만 추신수 에이전트인 보라스는 FA를 시야에 넣고 장기계약을 거부했다. 결국 397만 5000달러의 1년계약을 하게 되었다. 정규시즌에서는 6월에 데드볼을 맞아 왼손 엄지손가락이 골절되었다. 수술후 복귀하지만 옆구리 통증으로 계속 결장하게 되며 시즌을 마쳤다. 2012년 부상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155경기에 출전하며 성적도 많이 회복되었다. 시즌이 끝난후 추신수는 FA 자격을 1년 앞두게 되었고 급해진 클리블랜드는 트레이드 전략을 세우게 되었다. 12월 12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신시내티 레즈,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3개 구단이 참여한 ‘3각 트레이드’를 통해 추신수는 내셔널 리그 중부 팀 신시내티 레즈로 이적하게 되었다. 따라서 메이저 리그 진출 초기부터 몸담았던 아메리칸 리그에서 내셔널 리그로 옮기게 되었다. 등번호는 17번을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다. 클리블랜드는 신시내티로부터 외야수 드류 스텁스와 현금 350만달러를 받았고 애리조나로부터 투수 유망주인 트레버 바우어와 우완 불펜 투수 브라이언 쇼, 맷 앨버스 등 4명을 받았다. 신시내티는 클리블랜드로부터 추신수와 내야수 제이슨 도날드를 받았다. 애리조나는 신시내티에서 유격수 유망주 디디 그레고리우스를 받았고 클리블랜드에서 좌완 불펜 투수 토니 십과 1루수 유망주 라스 앤더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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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자신의 MLB 커리어 사상 가장 뛰어난 한 해를 보냈다. 선발출장한 모든경기에서 1번타자로 기용되었다. 수비에서는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지만 타격에서는 개인통산 3번째 20-20을 달성하였고 출루율.423, wRC+ 151, wOBA.323, Offensive WAR 6.4를 기록하며 굉장히 좋은 활약을 펼쳤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는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토니 왓슨을 상대로 홈런을 쳐내 한국인 최초로 포스트시즌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한편 추신수가 이적한 내셔널 리그에는 류현진의 소속팀인 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가 있어서 한국인 투타 대결이 관심을 모으게 되었고 밀워키 브루어스에는 일본인 아오키 노리치카도 있어서 한・일 1번 타자 맞대결도 주목받게 되었다. 시즌이 끝나고 나서는 FA가 되었다.
2013년 12월 22일 텍사스 레인저스와 7년 총액 1억 3천만 달러(약 1379억원)에 계약하였다. 이로써 추신수는 박찬호에 이어 텍사스 레인저스에 진출한 두 번째 한국인이 되었다. 추신수의 계약 규모는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가 시애틀과 5년 9000만 달러로 계약한 금액을 뛰어넘는 액수이기 때문에 추신수의 연봉은 당시 아시아 야구선수 역사상 최고의 금액이며, 계약 당시 메이저 리그 역대 27위(외야수 역대 6위)에 해당했던 특급 대우이다. 텍사스와 계약한 추신수는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와 같은 팀이 되어 대한민국과 일본에서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2014년 초반에는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팔꿈치부상과 발목부상을 달고 뛴 나머지 6월부터 타격과 수비 모두 극심한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결국 9월에 팔꿈치와 발목수술을 받게 되며 시즌을 조기마감했다. 2015년 추신수는 전반기 타율이 0.096까지 내려가는 극심한 부진을 겪었지만 후반기에만 0.349의 타율을 기록해 시즌 전체 타율을 0.276로 마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 해에는 개인 시즌 최다 홈런인 22홈런을 기록한다. 2015년 7월 22일 추신수는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의 쿠어스 필드에서 열린 콜로라도 로키스와 방문 경기에서 7번 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전해 단타, 2루타, 3루타, 홈런을 모두 쳐내며, 미국 메이저 리그(MLB)에서 아시아 출신 선수 최초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다. 2016년에는 종아리, 햄스트링, 허리 등 여러 부위에 차례로 부상을 당하며 부상자 명단에 3번이나 오르내리는 등 경기에 결장하는 일이 잦아지게 되었고, 결국 2016년 8월 16일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에 위치한 글로브 라이프 파크 인 알링턴에서 열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홈경기 5회말 상대 선발 로스 뎃와일러가 던진 시속 141km짜리 몸 쪽 싱커에 타격 동작을 시작하다 왼쪽 팔에 공을 맞아 손목 골절상을 입고 시즌 4번째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당초 시즌 아웃이 예상되었으나 예상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여 시즌 막판인 10월 1일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에 위치한 글로브 라이프 파크 인 알링턴에서 열린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홈경기에서 복귀하여 3경기에 더 출전하고 정규 시즌을 마쳤다.
가족
부인 하원미 씨와 사이에서 2남 1녀(아들 추무빈, 추건우, 딸 추소희)를 두고 있다.
최근 JTBC 이방인 예능프로그램에 출현해 화재가 되고 있다.
추신수의 외삼촌인 박정태는 KBO 육성위원이다. 2013년 추신수가 텍사스와 7년간 총액 1억3000만 달러(약 1379억원)의 기념비적 계약에 성공하자 “대단하고 대견하고 멋진 조카”라고 추켜세웠다.
친동생인 추민기(본명 : 추신영)는 백제예술대학 연극영화과 졸업 후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국제대회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은메달 : 1회 (2009년)
- 아시안 게임 금메달 : 1회 (2010년) >> 5경기 출전 : 타율.571, OPS 2.096, 3홈런, 11타점, 2도루